1.바이올린의 황제, 니콜로 파가니니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는 18세기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연주가이자 작곡가로, 그의 뛰어난 연주 기술과 창의적인 작곡으로 ‘바이올린의 황제’로 불립니다. 그는 19세기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라, 글래식 기타 연주자이자 작곡자, 지휘자였습니다.

그는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낭만주의를 예고하면서 비르투오소 시대를 연 최초의 연주가입니다. 일부 학자를 사이에서 ‘파가니니’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사이의 신 고전주의에 활동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파격적인 연주기법을 통해 신기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여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수많은 뒷이야기를 낳은 ‘파가니니’에 관해 컬럼을 작성해 보겠습니다.

1.파가니니의 생애와 연주활동

파가니니는 1782년에서 1840년 사이에 이탈리아( 정확히는 제노바 공화국 )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이 재능을 일지감치 간파한 그의 부친은 자기 아들에게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혹독한 연습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17세부터 그는 이미 바이올린의 거장으로 북 이탈리아 지방에서 명성과 부를 거머쥐었을 만큼 이른 나이에 성공을 하였다고 합니다. 너무 이른나이에 찾아온 성공은 그를 방탕과 도박에 빠져들게 하였으며 결국 건강도 버리고 많은 빛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바이올린 ‘과르네리’까지 팔게 되었다고 합니다.

건강이 악화되어 한동안 연주활동을 중단했던 파가니니는 1804년 22세에는 제노바로 돌아와 다시 연주생활을 하였는데 이전보다 더한 명성을 얻게되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누이동생에게 초대되어 궁정가극장에서 3년간 지휘생활을 보냈습니다. 26세부터 46세때까지 20년간 그는 이탈리아 전역으로 연주활동을 하였으며 비 현실적인 연주 테크닉을 선보이면서 청중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명성은 이탈리아를 넘어 전 유럽지역에 퍼져나갔습니다.

말년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왕복하면서 연주활동을 이어나났고 그가 워낙 높은 인세를 요구하였기에 생전에 출판된 작품은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연주기법이 공개되는것을 그리 반기지 않았던 관계로 공개적인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무리한 연주활동을 통한 건강악화와 여자를 밝히는 성격탓에 매독까지 걸려 고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말련에 그는 결핵으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니차에서 57세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어려운 곡들과 기술적으로 도전적인 연주로 유명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연주 스타일을 개발했습니다. 그의 연주는 기술적 완벽함과 놀라운 음악적 감각을 결합해 청중을 매혹시킵니다.

2.파가니니의 작품과 영향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솔로 작품뿐만 아니라 협주곡과 실내악, 독주곡 등 다양한 음악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기술적 훈련을 넘어 예술적 표현과 깊은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혁신적인 연주 스타일은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의 기법은 현재까지도 연주자들 사이에서 연구되고 응용되고 있습니다.

그의 연주는 리스트, 브람스, 망고레등 여러 유명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832년 파가니니의 연주를 직접본 리스트는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아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의 연주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어 그를 좋지않게 보던 사람들도 그의 연주를 보고난뒤에는 그에대한 열열한 팬이 되었다고 합니다. 연주장에서 관객들이 집단적으로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던지 기절한다던지 하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며 ‘파가니니’의 영화에 단골 장면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나 인기 아이돌과 같은 입장이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3.파가니니가 클래식 음악계에 미친 영향

파가니니는 쇼맨십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남들이 하기 어려운 연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면서 한편으로는 “오히려 기교뿐인 연주이고 음악에 진지한 마음이 없다.”는 혹평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파가니니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클래식 기타 연주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타연주를 대중들 앞에서 했다는 기록은 없는데 이는 바이올린처럼 압도적인 연주를 기타를 통해서는 할수 없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클래식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킨 인물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의 독특한 연주 기술과 창의적인 작곡은 당대의 음악계뿐만 아니라 현대의 음악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음악가들에게 연주되고, 그의 기법과 음악적 스타일은 계속해서 연구되고 발전되고 있습니다.

현대 대중음악에도 기타나 키보드연주를 통해 파가니니의 연주를 재 해석하는 시도가 종종 있습니다.

4.파가니니의 에피소드

첫번째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파가니니는 자신의 재능을 얻는 댓가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겼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몇가지 해석이 있는데 하도 주변에서 파가니니에게 “어떤수작을 부리길레 악기에서 그런소리가 나느냐?”라는 시샘어린 조롱이 빗발치자 그는 홧김에 “내 바이올린엔 악마가 있고 내활에도 악마가 있소, 나도 악마니 그리 아쇼! “라는 말을 했다가 일이 커졌다는 말이 있고 또하나는 파우스트를 보고 악마숭배의 컨셉을 잡아서 대중 마케팅으로 활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 유령의 바이올린 ” 일화가 있다. 한번 파가니니가 유령의 바이올린을 연주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연주가 너무나 실감나서 듣는 이들이 유령의 존재를 느꼈다는 일화는 파가니니의 연주가 초현실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반증이 되고 있습니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파가니니는 때로는 일부러 줄을 끊어놓고 연주 한다던지 하는 도발적인 연주를 통해 청중들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즉 청중들의 마음을 조정할줄 하는 연주자였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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